2018 02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018. 6. 3. 20:49book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오후.

'이대로는 하루가 지나가길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세수를 하고 집 앞 도서관에 갔다.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일과 관련된 도서를 보는 것도 잠시.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눈꺼풀의 무게를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환기시킬 만한 다른 책을 찾았다.

 

평소에 읽지 않는 소설 코너로 가서 집중력 약한 누구라도 읽을 수 있을 거 같은 얇은 책을 꺼내들었다. 책을 펼쳐보니 절반은 영어 버젼이었고, 한글로만 되었는 부분은 80여 쪽이었기에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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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 집단 따돌림이나 교실 내의 권력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 '어른들한테 말하지...' 같은 당연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으나 나의 학창시절을 회상해보면 당사자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고자질, 신고를 통해 그 가해자가 처벌을 받을 수는 있으나 계속 마주하게 된다는 걱정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그 안에서의 권력자는 어른들보다 크게만 보인다. 이것이 학생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회에서도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불의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 수 차례 실패해서 지속적인 피해를 당하고 무기력해지다보면, 그 사회의 룰을 따르며 적당한 이득을 취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책의 후반부에도 있지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 드러난다.

 

"너희들의 용기 없음에 대한 매이기도 하지만 너희들이 사회에 나가서 만들 세상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정확한 텍스트는 아니지만 이런 뉘앙스다.)

 

이 작품이 나온 80년대의 한국은 이미 그랬고,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그렇다. 정의를 말하고 피해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느 정도 묵인 가능한 피해정도는 감내하면서 정해진 룰을 따르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원한다. 권력의 집단은 자신들의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세계를 무너트리려는 새로운 자를 응징을 하고, 그런 세태를 본 대중은 함께 저항하기보다는 그 표적이 내가 아니길 바라면서 그들의 세계에 자발적으로 입당한다.

 

아직 한국의 국민성으로는 멀고 먼 이야기다. 현 기득권과 비슷한 규모의 아주 양심적인 집단이 출현한다해도 그 전쟁은 길고 길 것이다. 기존 기득권의 핵심 계층 뿐만 아니라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소외된 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왕국이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